2008년 06월 11일
촛불의 강이 흘러 모두가 소통하는 바다가 되길 꿈꾸며.
맘 편히 돈 벌고 글 쓰고 게임하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그렇게 두질 않는다. 어제도 촛불시위에 나갔다. 원래는 퇴근하고 바로 갈 예정이었으나 집안일로 좀 늦게 참가했다. 시청역에서 지하철이 정차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회현역에서 내려 시청 앞까지 걸어갔다. 평일임에도 대단한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이 인파가 어디까지 이어졌을까 싶어 광화문을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인파는 끝이 없었다. 가까스로 동아일보사 앞에 올라가 명박산성을 보고, 그 앞까지 가득차고, 양 옆으로 뻗어나가는 촛불의 강을 보았다. 나는 안국동을 향한 행진에 참여하여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꽤 실망스러운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선두는 이미 안국동 사거리를 지나 늘 막혀있는 그 곳까지 도착했는데, 그곳에 있는 명박산성 2호에 막혀 사람들은 죄다 서머셋 호텔쪽의 옆길을 통해 광화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6월 1일 이후로 그 쪽은 늘 봉쇄되어 있는데, 대책위는 그쪽으로 행진을 독려하면서도 그 어떠한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이것은 그저 매일 반복되는 우리들만의 산책코스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안국동 사거리에서 정독도서관 쪽으로 올라가 삼청동길에 진입할 수도 있고 다른 루트가 없는 것이 아닌데도 도돌이표를 찍는 가두행진에 몹시 실망했다. 대책위는 정말로 청와대로 진출할 뜻이 있긴 한 걸까?
사실 나 역시 무조건적인 청와대 앞 점거에 대해선 그리 찬성하는 편이 아니다. 우리가 뭐 청와대 가서 때려부수고 명박이 때려잡자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든 촛불을 명박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게 해보자는 정도? 지금같은 상황에선 거기까지 가려면 샛길을 찾아서 전경을 밀어내고 닭장차를 밀어내야 하는데 현 상황을 보니 그게 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러면 좀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는데, 모여서 놀자판만 벌이고 있으니 이게 참 답답한 것이다. 그래, 즐겁고 누구나 모이는 분위기를 조성해서 사람이 더 모이면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끌어들인 사람이 얼마나 오래 갈지도 모르는 일이고, 같은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데, 술판 벌여놓은 꼴만 멀거니 보면서 자유발언에 박수만 짝짝짝 하는 꼴이 우습다.
명박산성은 정부가 우리에게 휘두른 또다른 폭력이다. 일체의 여지없는 철옹성. 물론 광화문에 모인 50만명이면 그거 하나 못 넘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화시위, 비폭력시위를 유지하기 위해 시민들은 전진을 멈췄다. 그리고 모든 의식도 거기서 멈췄다. 비폭력이라는 세 글자 앞에. 난 광화문으로 돌아와 스티로폼을 옮기시는 쿄코님을 도왔다. 도저히 그대로 보고 있기엔 너무나 답답했다. 명박산성 앞에 스티로폼을 하나 내리자마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며 논박이 오고갔다. 하지만 논박은 최초의 잠시 뿐이었고, 사람들은 모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자신의 말만을 반복하며 강제로 힘을 사용하는 등 비폭력이라는 구호 하에 또다른 폭력을 휘둘렀다. 그들은 비폭력이라는 구호에 사로잡혀 기존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 조금의 위험성이라도 있다면 폭력이 된다며, 우리가 폭도가 될 수 있다며 우리를 억눌렀다. 그렇다면 이 수많은 사람이 대체 왜 모였단 말인가.
수십만 시위대 전체를 하나의 사람으로 보자면 온건하지 못한, 폭력적인 행위를 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을 병균으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평화시위를 유지하려는 백혈구들이 무진장 많다. 다들 8일의 폭력시위를 통해 너무 위축된 것 같았다. 그때와 새벽은 상황이 매우 달랐다. 누군가의 폭력사태를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그것을 막으려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은데, 왜 그것이 안될까? 저 뒤에서는 술 좀 자시고 서로 싸우는 분들도 더러 있었는데 저분들 못말리나? 우리가 폭력시위를 하게 된 건가? 물론 우리가 하는 행동은 보다 적극적으로 전경들과 맞닿는 일이기에 훨씬 예민한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실제적 폭력행위가 아닌 퍼포먼스도 못할 정도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믿지 못한단 말인가? 그놈의 실체모를 프락치 괴담에 우리 모두 서로를 못 믿고 의심해야 하는 걸까?
기나긴 토론이 계속되며 인권단체연합? 인가 하는 곳에서 중재를 맡아 보다 많은 대중들 앞에서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사실 중재라기엔 이 쪽은 이미 해버렸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 그 의미는 별로 없었던 것 같지만. 결국은 거리를 두고 자유발언대를 쌓고 이명박에게 소리도 좀 지르고 다양한 소리를 내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컨테이너 바로 앞, 그러니까 발언대 뒤에서 그것이 쌓이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위험한데 왜 그리 높이 쌓느냐, 이건 아니다, 등등 반대 의견자들과의 충돌이 일어났다. 이런 충돌 방식은 옳지 않았다. 문제가 있다면 발언대 쪽으로 가서 다시 토론을 하고 모두의 의견을 다시 들어가면서 쌓던가 말던가 해야지 무조건적인 입장 고수에는 문제가 있었다. 이 부분에서 인권단체와 비폭력주의자들의 한계가 명백히 보였다. 애초의 의도와는 너무나도 엇나가 있었다. 쓴웃음을 짓고 뒤로 물러나 그 모습들을 지켜봤다. 위에 올라가서 태극기를 흔드는 인권단체 소속의 여성이 뭐라고 소리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밑에서는 온갖 아우성이 쏟아지고 있었다.
솔직히 실망스러운 상황이었고, 아침에 출근할 것을 생각해서 결국은 집으로 돌아왔다. 서울에서 택시타면 3-4만원은 줘야하는 경기도 거주민인지라 몹시 고민이 많았으나 부엉님의 구원으로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시 많은 토론이 있었고, 태극기가 꽂힌 스티로폼이 명박산성 위에 올라가고, 소수의 인원들이 그 위로 올라가 깃발을 흔들고 현수막을 들어보이며 의견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그렇게 폭력적이었나? 그들이 폭도인가? 저 모습이 단순히 한두사람의 선동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시민들간의 많은 이야기와 합의를 거쳐서 이루어진 모습이다. 넘어갈 수 있지만,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기서 멈춘 것이다. 우리 스스로 제동을 건 것이다. 이게 안 될 것 같았나? 많은 사람이 원한다면 그것을 단순히 막기보다, 어떻게하면 보다 안전하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무작정 막아서야 우리가 반대하는 정부, 조중동, 보수세력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다소 힘들더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또 다르게 낼 수 있는데 주저해야할 이유가 있는가? 편하게 돌아서 돌아서 가려다가 나중에 더 힘들어지면 그냥 포기할텐가?
정말 비폭력, 평화시위를 원한다면 무너진 시민질서부터 다시 회복하자. 돗자리 피고 앉아 술판 벌리고, 거나하게 취해서 난리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성숙한 자세를 갖도록 노력하자.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바르게 이야기 해보자. 진짜 비폭력, 평화시위를 원한다면 그에 걸맞는 관대함과 생각을 지녀보자. MB말고도 모든 국민과 함께 소통하자. 모두가 그리하는 것이 가능하진 않겠지만 모두가 그 분위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by | 2008/06/11 16:23 | 무덤 밖에서 | 트랙백 | 덧글(5)




